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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모 · @bangmo

7th Feb 2018 from TwitLonger

[최영미 시인에게 바치는 글]

최영미 시인은 오래된 후배다. 한참 어려웠을 때 별 도움은 못 됐지만 옆에서 지켜본 사람 중의 하나가 나... 말하자면 넌-섹슈얼(non-sexual) 옆집 오빠쯤 되는 역할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 고 김남주 시인이 술먹고 좀 흐트러지면, 내가 SOS로 불려 나가, 구원투수 역할을 하곤 했다.

참고로, 나는 김남주 시인이 출옥한 다음에 만났고, 그가 완전히 민족해방노선을 버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출옥한 다음엔 서정시만 썼다. 췌장암 걸리기 전 90년대 중반 당시 화폐로 월 백만원 정도 지불하고 '기 치료'를 받도록 도와드리기도 했다. 그가 숨진 다음, 일부 정치집단이 그를 '영원한 민족해방전사 시인'으로 포장했다. 천만에! 그가 직접 내게 한 말이 있다.

김남주: 내 시대는 끝났어야...시대가 바뀌어 부렀당께~~

나: 선배는 마지막 동학농민군이었죠. 백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존재한 마지막 표본...그래서 이제 서정시만 쓰는 것, 아닙니까..

그 곱던 최영미가 이제 중년 아줌씨가 되어, '돼지'라는 시집으로 신영복을 깠고, '괴물'이라는 시로 고은을 깠다.

문득 며칠전에 통혁당-크리스천아카데미의 막내 인맥으로 상당히 출세한 정치인을 만나서 한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저는 통혁당 사람들 경멸하고 증오합니다. 신영복, 박성중... 정말 000 같은 자들이죠. 단 한 명, 돌아가신 박경호 선배는 인정해요. 그분은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완전히 180도 바뀌었죠. 후배들 찾아가면, 땀흘리며 정직하게, 진실을 존중하며 세상을 살아갈 것을 이야기하곤 했죠. 아, 참, 박경호 선배가 서울대 정치과 선배기도 해요. 그분이 서울대 졸업하는 데 34년 쯤 걸렸어요...그래서 저도 그 정도 걸려서 대략 40년 만인 2017년에 졸업하려 했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빵잡이들 복학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게 돼서, 결국 졸업하지 못 하고 말았네요..아, 왜 박경호 선배보다 더 오랜 기간을 두고 졸업하려 했냐구요? 그거, 박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 동네 늙은이들 중에는, 정말 추접스런 자들 많다...'선생님, 선생님'하며 배우겠다고 쫓아다니는 젊은 여자 자빠뜨린 다음에, 지들끼리 앉아서, 누구 피부는 어떻고, 누구 유방은 어떻고, 누구 색쓰는 소리는 어떻고 주절대며 낄낄대는 종자들이다. (아, 물론 신영복이나 박성중이나 고은이 이런 종자들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결코 아니다. 아무튼 그 동네에 그런 종자들 있단 소리니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시길.)

나도 소싯적엔 팔난봉이었지만 '난봉꾼의 도리'란 게 있다. 세가지다.

첫째, 집닭은 안 먹는다.

같은 직장에 있는 여자, 혹은 내게 뭘 배우러 온 여자, 혹은 내게 물건 팔러 온 여자, 혹은 나보다 사회적 약자의 관계로 만난 여자는 안 먹는다.

둘째, 누구랑 잤니, 안 잤니 이슈에 대해선 아닥한다.

주위에서 무엇이라 수근거리든 그냥 아닥한다. 심지어 나랑 잔 적도 없는 어떤 여자가 자기 사정 때문에 머리깎고 출가한 다음, 모든 비난이 내게 쏟아진 적 있다. '뱅모가 모씨를 농락해서 모씨가 출가했다'--이때도 아닥했다. 왜? 그거 진상을 밝히면, "모씨는 뱅모 짝사랑하다 지 성질 못 이겨 출가했다"라는 이상한 버전으로 루머가 바뀌기 때문이다. 출가도 가슴아픈데, '자기 성질 못 이기는 여자'가 되면 더 가슴아픈 일이다.

셋째, 마누라가 임신 중일 때엔 난봉 부리지 않는다.

여자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그냥 안다. 난봉 부리면 그 마음고생이 뱃속의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빨갱이도 좋고 파랭이도 좋고, 종북도 좋고 반북도 좋은데, 우리, 최소한 '수컷 난봉꾼으로서의 도리'는 좀 지키고 살자. 한때 팔난봉이었던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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