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내 랩/힙합 트랙 16선


몇 주 전에 써놓고, 어디 안 올리고 있다가 너무 늦었다. 1월 말일에 후딱. 2016년 (2015.12 ~ 2016.11 발표) 국내 랩/힙합 트랙 16선 + 코멘트, 무순위인데, 아무래도 생각나는대로 적어서 반쯤 순위. 되도록 올해의 트랙 같은 것은 타이틀이나 싱글발표 한 것 꼽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몇 곡은 아닌 곡도.. 여기저기 5곡 ~ 10곡 정도만 추리고 있어 적은 감도 있고 16년이니 괜히 16트랙을 꼽았으니 체크해보시길.

PNSB – Olympus
PNSB는 자신이 래퍼, 또 예술가로서 어떤 경지에 올라와 있음을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거만하거나 자신감이 있다는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로 자신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기운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과시보다 공격적으로 들린다. 웅장한 공간감의 비트와 감정을 뒤흔드는 변주, 폭발하는 PNSB의 랩은 청각을 넘어 시각적인 경험을 넘치게 제공한다.

빈지노 - Time Travel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는 뻔한 테마를 가지고 평이한 구성이나 교조적 자세를 피하면서 세세한 상황묘사와 뛰어난 감정전달로 보편적 감흥을 끌어내는 “Time Travel”은 새 시대의 청춘찬가로 부를만하다. 빈지노의 여유 넘치는 세련된 랩 기술은 여전히 유려하고, 듣는 이를 단숨에 빠져들게 하는 연출력도 발군이다.

트라이비스트 - Flab (Fly Like A Bird)
찰나의 감정을 은유 가득한 시적인 표현에 집착하며 장황하게 풀어놓으면서 기술적 쾌감은 극대화하는 던말릭 특유의 랩을 즐길 수 있다. 드럼이 건조하게 퍼져가며 여운을 남기는 키마의 붐뱁 프로덕션도 치켜세울만하다. 싱글로 나왔거나 별도 홍보가 있었던 곡은 아니었지만,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화지 – 상아탑
예술지상주의의 사람들이 속세를 떠나 정적한 예술만을 즐기는 경지를 뜻하는 '상아탑'을 제목으로 건 이 노래에서 속세는 바로 '헬조선'으로 불리는 한국이다. 화지는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치열한 생활을 부정하고 상아탑 위에 올라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바라 본 세상을 조롱하며 쓴 웃음을 유발한다. [ZISSOU]를 여는 놀라운 인트로다.

비와이 – Forever
2016년 가장 주목 받은 랩퍼 비와이는 이 곡을 무기로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다. 비트를 완전히 지배하는 랩 퍼포먼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기교와 변주가 펼쳐지지만 그 과잉을 깔끔하게 매력적으로 마감해냈다. 속칭 ‘랩 서커스’를 기대하는 대중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도 힙합/랩 트랙의 완성도도 뛰어난 트랙이다.

나플라, AP - No Mercy
이제는 ‘메킷레인’이란 레이블로 모양새를 갖췄지만, 2015년부터 갑작스레 크게 주목 받은 LA 교포 랩퍼들이 있었고 그 중심엔 나플라가 있었다. 뛰어난 박자감각을 잘 활용하며 벌스를 긴장감 있게 조이며 쳐나가는 특유의 랩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곡이다. 통제불능의 톤은 오히려 여유 넘치는 기운을 만들고, 뻔한 가사는 나플라의 퍼포먼스로 어느새 치열함을 더해 다가온다.

김태균 - 이제는 떳떳하다
‘일년이면 돼’라는 인상적인 구절이 담긴 곡인데, 김태균은 “이제는 떳떳하다” 발표 후 정말 일 년 만에 데뷔앨범을 발표해 이 곡은 이제 좀 더 색다른 감상을 준다. 겹겹이 쌓인 다채로운 사운드가 점차 속도감을 더하며 이야기에 빨려들 듯 감흥을 증폭시키는 맛이 일품이다. 자신의 신념을 앞세운 태도와 목표를 확실히 하며 다짐하는 내용의 가사는 보편성을 가진다.

박재범, 어글리덕 - ㅎㄷㄷ(Put'em up)
박재범과 어글리덕의 합작 EP를 여는 곡이자 둘의 시너지가 가장 매력적으로 드러난 트랙이다. 위압적인 프로덕션에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 낸 공격적인 자기과시 랩, 그리고 거기에 의태어를 재치 있게 접목한 중독적인 훅까지 더해졌다. AOMG의 품질관리 능력이 다시금 빛나는 곡이다.

가리온 – 가가가
“무투”, “비밀의 화원”, “불멸을 말하며” 와 같은 싱글을 연이어 발표하던 그룹 가리온의 가장 매력적이었던 시기 2005년을 떠올리게 하는 싱글이다. 엠씨메타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랩 운용능력을 뽐내고, 나찰 역시 곡의 전투적인 곡의 기운을 잘 살려냈다. 여전히 ‘가리온’이라는 브랜드에 애정이 있다면 분명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재키와이, PNSB – Exposure
“Exposure”는 강한 대비가 주는 감흥이 예사롭지 않은 곡이다. 오토튠을 입은 재키와이가 서울이라는 공간, 나아가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비관적으로 읊조리는 것을 지나면, PNSB가 거만한 듯 자신감과 여유 넘치는 태도로 서울, 또 세상을 바꾼다고 선언한다. 같은 공간 같은 랩퍼로서 여성과 남성의 시선과 위치가 교차하며 묘한 슬픔을 만들어낸다.

비프리, 저스디스 – 거짓말(Lies)
2016년 7월에 발표한 [Free From Seoul]에 수록된 곡이지만, 탄핵정국인 지금 들으면 그 감흥이 더욱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가사가 담긴 곡이다. 어쿠스틱하고 키치한 기운 가득한 프로덕션에 비프리와 저스디스의 능글맞게 이어가는 플로우와 냉소적인 가사가 더해져 굉장히 매력적인 곡이 탄생했다.

저스디스 - 씹새끼 (Motherfucker pt.1)
저스디스의 데뷔앨범 내 서사를 이루는 곡 중 가장 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다. 이 곡만 떼놓고 보면 학교폭력 가해자의 시선을 잔인할 정도로 견지한 가사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저스디스는 앨범의 끊임없이 꼬이고 비틀린 심리상태가 하나의 큰 극 안에서 해소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항변하는데, 그 시작이 되는 곡이기도 하다. 감각적이면서 탄탄한 프로덕션은 과감한 변주로 몰입감을 더한다. 2016년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서 가장 주목 받은 곡 중 하나다.

제리케이, 우효 – 콜센터
[Trueself]로 자신을 그려내고, [현실, 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를 향한 직접적인 일갈을 날렸던 제리케이는 [감정노동]으로 힙합 시장, 또 사회의 이면을 여러 시선으로 바라본다. “콜센터”는 앨범의 타이틀에 가장 부합하는 싱글이다. 여성, 계약직, 감정노동자의 교집합인 콜센터 직원의 일상과 감정으로 이 시대의 약자들을 위로하며 응원하는 노래다.

리짓군즈 – 야자수
어센틱의 어쿠스틱한 레이드-백 비트에 블랭타임, 뱃사공, 제이호의 튀지는 않지만 각자의 색이 살아있는 랩이 잘 어우러졌다. 이 곡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으로 현실의 쓸쓸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리짓군즈의 독특한 컨셉을 만끽할 수 있다. 친구들과 소박하게 떠나는 제주도 여행에서도 그들만의 짠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재미난 곡이다.

넉살 – 팔지 않아
데뷔 앨범 [작은 것들의 신] 발표 후 2016년 활발히 활동한 넉살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랩퍼로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에서 살기 위해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줄 수 밖에 없는 많은 약자들에게 보내는 노래로 들리며 보편성을 획득한다. 디프라이의 스케일 있으면서 청량한 프로덕션과 넉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의 조합도 깔끔하다.

바스코, 박재범 - 맨 위의 맨 위
누구보다 꾸준하면서 의욕적인 결과물을 발표하고 있는 바스코의 믹스테입 [MADMAX]에 수록된 곡이다. 바스코 특유의 하드코어함이 잘 살아 있는데, 이전에는 벼랑 끝에서 외치는 패기가 느껴졌다면, 이제는 곡 제목 그대로 위에서 바라보는 듯 하다. 하지만, 바스코만이 지닌 내일은 없는 듯 치열하게 랩을 뱉는 기운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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