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llove9094

개차반 · @exollove9094

10th Oct 2015 from TwitLonger

[백열]monteral


*수위 주의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적어도 찬열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부기관에 소속된 히어로 센티넬인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의 가이드인 아버지의 죽음을 맞닥뜨렸을때부터 찬열은 그리 생각했다.



흰 천이 덮힌 들것에 누운 두 구의 시신은 새까맣고 새빨갛게 점칠된 고깃덩어리였다.
강한 빌런과 대적하다 너무나 큰 힘의 손실로 불의 센티넬인 어머니가 폭주하고 말았다.
가이드인 아버지는 어머니를 막으려 했지만 결국 어머니가 일으킨 불길에 휘말려 사망한 것이라며 기관의 사람들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놀랍도록 간단한 이유였다.
부모님만이 제 세계의 전부였던 열살배기 어린 센티넬 찬열은 쉬이 납득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보호자를 잃은 찬열은 정부기관 소속 보육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하였다.
그런 찬열이 알고 지내는 인맥이라고는 단 한 명 뿐이었다.


보육원에 봉사를 온 정부기관의 간부가족.
그들의 외동아들인 백현이었다.




[여기서 뭐해?]




찬열과 백현은 동갑내기였고 부모님의 죽음으로 마음의 문을 걸어잠근 찬열은 제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미는 백현에게 시선을 던졌다.





[괜찮으면 나랑 놀래?너 되게 심심해보이거든.나도 엄청 심심한데.]





살풋 눈을 휘며 환하게 웃어보이는 백현의 말간 미소를 마주한 찬열은 그때서야 백현에게 잡힌 제 손을 깨달았다.
빼내려고 했지만 힘을 주어 그런 찬열의 손을 붙잡는 백현의 악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난 12살인데,넌 몇 살이야?]
[...12살.]


[어,친구네?]




그러고선 백현은 붕붕 찬열의 손을 잡은 제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백현과 찬열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일방적인 백현의 다가감이었지만 그런 백현을 모질게 밀어내지 못한 찬열 덕분에도 두 사람은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자주 봉사를 하러 오는 간부내외와 백현에 찬열은 더욱 자주 백현과 부딪쳤고 얼굴을 마주했고 대화를 했으며 종래에는 백현을 향해 웃어보였다.
찬열의 웃음을 처음으로 보게 된 중학생의 백현은 그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일 뿐이었다.



성인이 된 찬열은 보육원을 나와 당연하단 듯 정부기관의 히어로로 입사했다.
어머니의 센티넬을 그대로 물려받아 강한 불의 능력을 가지고 있던 찬열은 우수한 인재로 여겨져 모두의 인정을 받고 승승장구하였고 히어로 박찬열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빌런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불의 히어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빌런이라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찬열이 지나간 자리엔 시체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빌런들의 살덩어리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찬열이 승승장구하던 그 때에 백현이 센티넬로써 발현했다.



유래없는 빛의 센티넬.
그것에 정부기관은 크게 환호했다.


센티넬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찬열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아니 어쩌면 찬열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빛의 센티넬은 자연스레 정부기관의 넘치는 신임과 선망을 받게 되었다.



정부의 기대를 업고 이제 갓 태어난 것과도 같은 신생 센티넬 백현은 순식간에 찬열이 오랜시간을 가지고 올라섰던 자리까지 나란히 서게 되었다.
히어로 센티넬들은 그에 히어로들 중 최고라 불리던 찬열이 백현을 향해 이를 갈 것이라 여겼다.


고작 젖먹이 센티넬인 주제에 유래없는 능력 하나만 믿고 센티넬들의 정점을 찍는 자신의 자리까지 감히 올라선 것이니.


하지만 그것은 센티넬들의 오판이었다.




"하아..."




짙은 한숨이 입술새를 비집고 새어나왔다.
그런 찬열의 뒷머리를 헤집던 손을 떼어내며 천열에게서 아쉽게 떨어지는 백현의 입술이 무언가에 젖어 번들거렸다.


색색 거친 숨을 내쉬는 찬열의 눈가가 붉게 달아있었다.
깜박이는 백현의 검은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려졌다 드러났다.


욕망에 젖은 눈이었다.





"진짜 미치겠다,너 때문에."




그리고 백현은 다시 제 앞의 찬열에게 입을 맞추었다.
백현의 손에 떠밀려 딱딱한 벽에 밀어붙여진 찬열은 속수무책으로 다시 입술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움찔이던 찬열의 손 끝이 결국은 제게 입 맞추는 백현의 뒷목을 감쌌다.



고개를 틀어내는 백현의 혀가 찬열의 입안을 휘저었다.
찬열은 아주 천천히 그 키스에 응해주었다.



찬열의 옷 속으로 키스를 이어가는 백현의 손이 들어섰다.
흠칫이는 찬열을 달래듯이 깊게 파여있는 찬열의 척추선을 부드러이 훑어올라가던 손이 볼록히 튀어나온 마른 날개뼈를 쓸어내었다.


백현의 옷깃을 구겨잡은 찬열의 손 끝이 새하얗게 질렸다.


느릿한 움직임으로 등에서 가슴 쪽으로 옮겨가는 백현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 찬열의 유두가 잡혔다.




"으음..."




백현에게 막힌 입술대신 찬열의 목에서 앓는 소리가 흘렀다.



철컥,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퍼가 내려갔고 찬열의 치골을 지나 허벅지를 타고 바지가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백현의 입맞춤은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깊었다.
찬열이 내쉬는 모든 숨 하나 하나 놓치지 않을 것처럼 그는 깊게 입을 맞추었고 진득하게 혀를 얽었다.


결국 찬열의 입가가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타액으로 완전히 젖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백현은 만족하지 못했다.



하나 남은 드로즈까지 백현은 손을 뻗었고 끝내 얇은 천조각까지 찬열의 종아리를 타고 내려가버렸다.


백현의 손이 드러난 찬열의 마른 허벅지를 쓸어내리다 천천히 찬열의 무릎 뒤쪽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곤 한 쪽 다리가 들어올려졌다.



지익,다시끔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아플꺼야."




목이 타는지 입을 여는 백현의 목소리가 사뭇 건조했다.
찬열은 대답없이 백현의 곧은 어깨 위로 제 이마를 묻었다.



센티넬과 센티넬인 두 사람의 가이드는 서로였다.


유래없는 빛의 센티넬에 더해 서로가 센티넬이자 가이드인 두 사람은 이따금 지나친 힘의 소비로 폭주의 기미가 느껴질때마다 몸을 섞었다.
물론,주로 요구를 하는 이는 찬열보다 백현 쪽이었지만 말이다.



백현에게 이를 갈 것이라 여기는 찬열은 자신을 원하는 백현에게 말없이 몸을 내어주었다.
사랑해서 하는 관계라기보다는 목적을 위해,그보다는 오랜 정에 못이겨 하는 관계에 가까웠다.




"아...!"




낮은 목소리였지만 높은 톤의 교성이 흘렀고 찬열의 몸이 들썩였다.
천장을 향해 한껏 고개를 들어올린 찬열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었다.


그런 찬열의 길게 뻗은 목덜미에 백현은 입술을 묻었다.


다시 한번 깊게 쳐올리는 백현 때문에 찬열의 몸이 한 차례 흔들렸다.
백현에 의해 허리께까지 들린 찬열의 한 쪽 다리는 완전히 힘을 잃고 허공에서 덜렁이고 있었다.


찬열의 무릎 뒤쪽을 받치는 손을 떼어내지 않은 채 찬열의 안에서 반쯤 빠져나가던 백현은 다시끔 급하게 들어서고 말았다.
덜렁이는 고환 두 쪽까지 느껴질 정도로 찬열의 안, 아주 깊숙히 백현이 자리했다.



뿌리 끝까지 들어선 것은 왠만해서는 빠질 것 같지가 않았다.
뒷머리가 벽에 짓눌린채 높게 치켜든 찬열의 목에서 꺽꺽이는 소리가 났다.


찬열의 턱을 타고 흐르는 타액을 백현은 혀를 내밀어 천천히 핥아올렸다.




"...찬열아."




찬열의 입술까지 다다른 혀는 생각과는 다르게 얌전히 원래의 자리인 입안으로 들어갔고 백현은 그 자리에 멈춰 속삭였다.





"사랑해."




달콤한 고백을 뱉는 따스한 입김이 젖은 찬열의 입술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찬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현은 굳게 다물어진 입술 위로 다시 제 입을 묻었다.
이렇게 깊게 자신을 각인시켜도, 쾌락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어도 찬열은 행위가 끝나면 미련없이 백현의 방을 삐져나갔다.



그래,솔직히 이야기해서 목적을 위해 몸을 섞는 이는 찬열뿐이었다.
그리고 그보다는 오랜 정에 못이겨 하는 행위에 더 가까웠다.


찬열에게 관계를 요구하는 백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박찬열은 변백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백현이 찬열에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지는 오래였다.




...




차가운 칼바람이 불었다.
12월의 겨울은 특히나 더 추운 날씨였다.


최저 영하 12도 이상까지 떨어지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날씨는 특히 더했다.



찬열은 뜨거운 불의 능력을 지닌 센티넬답지 않게 이상하게 추운 걸 좋아했다.
찬열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순백의 눈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일까?



발갛게 얼은 코 아래 백현의 벌어진 입술이 입김을 토했다.
꽤나 넓게 퍼질 것 같던 입김이 차가운 기온에 눌려 더 이상 퍼지지 않는 걸 바라보며 백현은 두 눈을 깜빡였다.


도시 몬트리올을 둘러싸듯이 감싸고 있는 이 산은 섬인 몬트리올의 유일한 산 몽로얄이라고 했다.


몽로얄로 올라가는 도로 위는 새하얀 설원으로 뒤덮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도 차도 하나 보이지 않은 눈덮힌 넒은 도로 한 가운데에 멈춰서 백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로 곳곳에 높게 솟아오른 삼림수들은 백색의 두터운 눈옷을 덮어 쓴 채였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건지 쥐죽은 듯한 정적 속에서 백현은 걸음을 떼어냈다.
백현의 발 아래 딱딱하게 얼어붙은 눈들이 뽀득뽀득 밟히고 있었다.



머리 위로 쓴 털모자가 백현이 걸어갈때마다 따라서 흔들렸다.
차가운 시린 겨울바람에 백현은 제 두툼한 다운자켓을 조금 더 꼭 여미었다.




그리고 저 멀리,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넓고 긴 도로의 끝과 끝.
그곳에 백현과 찬열이 서 있었다.




"...찬열아."




뽀득뽀득 눈을 밟고 다가오는 찬열의 발자국 소리가 공허한 산을 울렸다.
걸음을 멈춘 백현은 다시 한번 찬열을 불렀다.




"박찬열."




두 번의 부름끝에 그때서야 대답없이 걸음만 옮기는 찬열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하지만 이미 백현의 바로 앞까지 찬열은 다가온 뒤였다.
그런 찬열을 마주하며 백현은 조심스레 입을 떼어냈다.




"어째서 빌런의 편에 선 거야?"




정부기관의 히어로로써 찬열을 향해 질문을 던지면서도 백현의 시선은 빠르게 찬열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따뜻한 모자와 두툼한 외투로 단단히 몸을 감싼 찬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도 못보던 새에 반쪽이 된 것 같은 얼굴에 백현은 또 덜컥 심장이 내려앉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정부기관을 배신하고 히어로였던 찬열이 빌런의 편에 선지 근 석달만이었다.





"왜,우리한테 등을 돌린 거야?찬열아."
"..등을 돌려?"




그리고 근 석 달만에 만난지 처음으로 찬열이 입을 떼어냈다.




"누가 등을 돌려?내가?아니야."
"찬열아."


"먼저 등을 돌린 건 너희 정부기관이지.변백현 네 아버지였기도 했고."




그 말에 백현은 침묵했다.





"정부에 몸 바쳐 일하던 내 부모님들께 등을 돌린 건 너희였고,간부인 네 아버지였어."
"......."


"아니,더 정확히 말해볼까?"




표정없던 찬열의 입가에 비소가 스몄다.
쭈욱 길게 끌어올려진 입꼬리 사이로 찬열의 고른 치열이 드러났다.




"센티넬 중 전례없이 강한 힘을 가진 내 어머니를 너희는 경외하다 못해 무서워했어.그러다 가이드인 아버지를 보냈지.아버지를 이용해 어떻게든 어머니를 통제하기 위해서."
"........"


"그렇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두 분이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 버린거야."




백현으로써는 두 번째로 보는 찬열의 미소였다.
첫번째 미소처럼 티끌없이 밝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백현은 두 눈을 커다랗게 떠 보였다.




"너희는 당황했고 타깃을 바꿔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남자를 설득했지."
"......."


"그게 변백현 네 아버지고."
"......."


"정부기관은 네 아버지에게 그랬을꺼야.내 어머니를 강한 빌런들과 맞서게 만들어 폭주 직전의 상태로까지 몰아붙이자고.그리고 가이드인 아버지가 간신히 어머니를 진정시키면 그것을 빌미로 목숨이 위험하니 이만 히어로의 일에서 손을 떼게 할 속셈으로 말이지."
"......."


"겁을 먹은 어머니는 일반인이 되어 아버지와 남은 여생을 평범히 보내실테고 네 아버지는 간부의 자리까지 올라 가족들을 더 편히 부양하는 해피엔딩으로 말이야."




아,그런데 어떡하지?
웃음기 서린 질문이 끝나고 찬열이 두 손을 들어 넓게 펴보였다.


흡사 어른이 아이와 놀아주는 것 같이 과장스레 깜짝 놀란 체를 하는 자태였다.





"폭주 직전까지만 몰아붙인다는 게 어머니가 끝내 폭주해버리고 마셨네?아버지는 어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뜨거운 불길에 뛰어들었고 결국엔 새까맣게 타 버렸어."
"........"


"내 부모님은 그렇게 목숨을 잃었고 네 아버지는 죄책감에 시달렸지."





한 발자국 백현이 찬열에게 다가왔다.





"자신 때문에 죽은 친구의 아들인 나를 보기 위해서 봉사활동을 핑계로 자주 보육원에 들렀고 네 아버지는 변백현 네게 그랬겠지."
"......."


"찬열이라는 아이와 친하게 지내렴."
"......."


"그 아이가 네가 없인 못살만큼,오로지 너만 볼 수 있게.그 정도로 가까워지렴."
"......."


"네 말 하나에도 꼼짝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래서 그 아이가 복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알았지?백현아.



그럼 아버지의 말을 어긴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착한 아들 백현이는 어떻게 할까?
네,아버지라면서 나에게 다가왔겠지?


그리고 정말 아버지의 말대로 박찬열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변백현밖에 없게 되었어.





"변백현만이 전부가 되었고 이젠 하다못해 변백현이 나한테 사랑을 말하네?"




다가오는 백현의 한 손에 어느새 꺼낸 건지 날카롭게 벼려진 군용 나이프가 들려있었다.
그것을 감흥없이 바라보는 찬열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아니야,백현아."




우뚝,백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난 너 사랑 안해."
"......."


"너 자신까지 속여가며 나를 사랑하는 척한 연기는 훌륭했어."




느릿하게 한 손을 들어올리는 찬열의 손바닥 안에 작은 화염이 일렁이다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는 그것에 백현은 말없이 시선을 던졌다.





"난 망설임없이 널 죽여버릴 수 있거든."




그 말에 피식,백현의 입술이 실소를 뱉었다.
찬열의 손아귀 안, 무섭도록 일렁이는 화염덩어리에서 시선을 떼어 백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죽여 봐."
"......."


"기왕이면 이 칼로,네가 진짜 날 죽일 수 있다면 말이야."




자신이 쥐고 있던 나이프의 손잡이 부분을 돌려 찬열 쪽으로 건네는 백현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속살였다.





"불로 태워죽이기에는 죽이는 맛이 안 나잖아?네가 진짜 날 죽일 수 있다면 네 손으로 직접 내 뱃가죽을 쑤셔보라고.박찬열."
"........"


"지금까지 참고 지냈던 모든 걸 담아서."





찬열의 두 눈이 느릿하게 감겼다 뜨여졌다.
한 손에 소용돌이치던 화염은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천천히 뻗어지는 찬열의 손이 내밀어진 나이프의 손잡이 부분을 느릿하게 감싸쥐었다.




"넌 못해.찬열아."




웃음기가 가득 어린 백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열은 나이프를 박아넣었다.
정확하게 백현의 왼쪽 가슴을 향해서.



크게 벌어진 백현의 동공이 서서히 경련하기 시작했다.
두터운 외투를 입었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군용 나이프에 그것은 아무런 보호막도 되주지 못했다.


힘을 잃은 백현의 몸이 기우뚱 넘어가 찬열의 품 안으로 쓰러져 내렸다.
제 어깨에 고개를 묻은 백현이 숨이 미약하게 내뱉어졌다.



그런 백현의 등 뒤로 두 손을 가져간 찬열이 꾸욱 백현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백현의 가슴에 깊게 박힌 나이프 사이로 새빨간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툭,투둑.
백색의 눈 위로 시뻘건 핏방울이 떨어졌다.



스르르,힘이 풀린 백현의 두 다리에 백현의 머리가 찬열의 어깨에서 미끌어져 내렸다.
푹신한 눈 위로 무릎을 꿇은 백현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풀썩.마침내 백현이 차가운 눈 위로 엎어져버리고 말았다.




찬열은 아무런 말없이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찬열아...]




어깨 위로 고개를 묻던 백현이 끊어질듯한 숨을 내쉬며 힘겹게 입을 열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곧...정부 사람들이...하아..올 꺼야.]




협박이었다.
무장을 한 정부의 사람들이 히어로 센티넬들을 대동하고 나타날 것이니 혼자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것이란 협박.


변백현은 죽어가면서까지 정부의 개였고 아버지의 말 잘 듣는 아들이었다.




[살아.]




그리고 뒤이어 백현은 말했다.





[끝까,지...살아...너라면....]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백현은 쓰러져 내렸다.
멍하니 미동없는 백현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찬열의 동공이 희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정부기관에서 가장 강한 두 센티넬 박찬열과 변백현.
박찬열과 싸워도 비등하게 겨룰 수 있을 유일한 센티넬인 변백현이 박찬열의 화염도 아닌 맨손으로 쥔 나이프에 찔려 죽었다면,그것도 저항조자 하지 못했다면 그 시체를 본 정부기관은 어떻게 생각할까?


틀림없이 박찬열에게 대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꽁지가 빠져라 겁에 질려 달아날 것이다.



변백현을 제외하고 박찬열을 이길 수 있을만한 무기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씨발."




아름다운 이별은 없었다.
나지막히 욕을 짓씹은 찬열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날,몬트리올 몽로얄의 새벽하늘 위로는 붉은 화염이 커다랗게 치솟아 올랐다.
사방으로 두텁게 뒤덮힌 눈 덕분에 불길은 다행히 더 크게 퍼지지는 않았지만 새까맣게 타버린 대지의 평수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아,아니다.


단 두 명.
몽로얄로 올라가는 도로 한 가운데 새까맣게 타 버린 남성의 시신 두 구가 발견되었다.




정부는 서둘러 그 시신들을 수거해갔고 몬트리올의 사람들에게 비밀을 지켜달라며 엄청난 거액을 건네었다.
그에 사람들은 눈과 입을 닫았지만 이따금씩 자기들끼리 그 날의 이야기를 속삭였다.



까맣게 타 버린 땅 위로 뒤덮혔던 눈이 녹고 서서히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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